식약처가 롯데쇼핑·BGF리테일과 함께 냉장고 문 달기 시범사업을 시작하고 3월31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쇼케이스에 문을 달면 개방형일 때보다 적정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식품안전이 확보된다. 우선 식중독 발생 우려를 줄이는 효과와 함께 냉기유실이 방지되는 장점도 생긴다. 사업자들은 전기요금을 절감할 수 있으며 전력생산에 필요한 탄소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개방형인 경우 냉기유출을 막을 수가 없어 여름철에는 온도유지가 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식품유통 전 과정에서 온도는 식품품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한 냉장·냉동식품 유통량까지 고려할 때 식품 관련 유통기준 강화는 필연적이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사업전망이 썩 밝지만은 않다. 편의점이나 영세사업자들은 비용문제 등을 예로 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좁은 마트 안에서 쇼케이스에 문까지 달 경우 소비자 이동동선에 문제가 생긴다는 의견도 있다.
식약처도 문제를 인지하고 영세업자 지원을 위한 예산확보 등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이번 시범사업으로 성과를 확인하고 검토한 후 업계 전반에 확산시키기 위한 자료로 활용할 예정인 만큼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식품안전 확보
냉장고 문 달기 사업은 냉장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고 식품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식약처에서 강조하는 사업취지도 이 대목에 있다.
우선 온도는 식품안전 차원에서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관리항목이다. 각 식품이 가진 특성에 맞는 적정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밀폐형 쇼케이스 도입이 필요하다. 개방형 쇼케이스를 사용할 때는 식품을 균일한 온도로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2021년 6월 에너지시민연대가 실시한 냉방실태조사에서는 개방형 냉장고 주변 평균 실내온도가 약 20℃였다. 밀폐형이 아닌 이상 쇼케이스 안에 보관된 식품도 주변온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름철 문을 연 채 영업하는 매장이 많은 현실을 고려할 때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더 커진다.
미국 FDA에서는 살모넬라균이 10℃ 이상에서 증식하고 그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억제된다는 연구를 기반으로 식용란 유통 시 최대온도를 7℃로 지정했으며 소매단계에서는 5℃를 적용한다. 유럽연합은 난각의 천연 코팅층인 큐티클 손상을 막기 위해 세척을 금지하고 냉장란 보관온도를 0~5℃로 지정했다.
특히 식중독균인 살모넬라는 6℃, 리스테리아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은 5℃ 이하 저온에서도 생장이 가능하기에 해당 균주에 취약한 식품군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식중독 발생건수는 온도가 1℃ 오를 때 5.27% 증가하고 환자 수는 6.18%가 증가한다는 통계자료가 있는 만큼 식품안전에 온도관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냉장유통 온도를 10℃에서 5℃로 강화하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던 내용이기도 하다.
에너지절감 65%까지 가능
밀폐형 쇼케이스는 냉기유실이 적어 에너지절감과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 개방형 쇼케이스에 비해 에너지를 25~65%까지 절감할 수 있고 계절이나 설정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하절기에는 절감률이 특히 증가한다. 예를 들어 설정온도가 5℃일 때 겨울에는 개방형대비 밀폐형 쇼케이스 에너지절감률이 약 40%이며 여름에는 65%로 25%p 증가한다. 10℃ 기준으로는 겨울철 절감률과 여름철 절감률이 각각 25%와 61%로 무려 36%p가 차이난다.
전국의 모든 쇼케이스에 문을 달 경우 전력사용량을 연간 최대 1,780GWh 절감할 수 있다. 참고로 인구가 37만명인 마포구는 2020년 기준 전력사용량이 1,366GWh다. 절감 가능한 탄소배출량은 연간 약 81만tCO₂로 소나무 11만그루가 흡수하는 양이다. 면적으로 환산 시 한라산 크기의 약 10배에 달한다.
에너지절감을 통해 기대되는 절감비용은 2,194억원이다. 이와 함께 탄소배출량 감소효과로 기대되는 이익은 226억원으로 종합하면 기대되는 효과가 총 2,420억원이다.
초기 투자비용 ‘문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크지만 유통업계는 사업진행에 일부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소비자가 불편을 느낄 수 있다는 점과 밀폐형 쇼케이스 도입에 드는 초기비용이다.
기존에 없던 쇼케이스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점은 소비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 더구나 문을 매개로 한 코로나19 등 전염병 전파 가능성도 있으며 쇼케이스 안에 김이 서려 내용물 확인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 불편은 유통업체들이 도어형 쇼케이스 도입을 꺼리는 대표적인 이유로 지목됐다.
그러나 소비자 인식은 예상과 달랐다. 2022년 2월 실시한 소비자 인식조사에서 80% 이상이 문 설치로 인한 불편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도어형 쇼케이스를 선호하는 이유로 △더 안전한 식품섭취 가능 △탄소중립으로 인한 지구환경 보호 △에너지절감으로 전력부족 해소 등을 꼽았다.
이렇듯 소비자 인식은 나쁘지 않다. 남은 문제는 문 설치에 드는 비용으로 식약처가 파악 중인 냉장고 개조비용은 냉장고 1대당 100만원 정도다. 물론 업체 상황이나 쇼케이스 사양에 따라 다르지만 영세업체에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금액이다.
예산확보 관건
식약처는 기존 사용 중인 쇼케이스를 모두 교체하거나 개조하기보다는 신규설치나 교체 등 수요발생 시 도어형 쇼케이스를 도입하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영세업체들을 보조하기 위한 관련 예산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식약처의 관계자는 “식품안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유통업체들이 식품안전 향상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ESG경영의 일환으로 사회적 책무 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식약처는 냉동 보존·유통기준의 합리적 개선을 위해 차량으로 운송하는 냉동식품에 대한 현장 실태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