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화물차 번호판사용료, 명의이전 비용 등 명목으로 화물차주에게 부당한 부담을 안긴 운송사의 ‘지입제갑질’이 금지된다. 국내 물류운송업계 오랜 관행인 지입제에 따른 부작용인 이른바 ‘번호판 장사’ 등 폐단이 근절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토교통부(장관 박상우)는 1월18일 지입제폐단을 근절하고 화물차주의 권익개선을 위해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입법 예고기간은 1월19일부터 2월28일까지다. 또한 화물차주의 소득 안정을 위해 표준운임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예정이다.
일하지 않는 운송사 규제
지입제는 화물차주가 자신의 차량을 운송사 명의로 등록해 사실상 독립적인 영업을 하면서도 운송사에 보증금 및 지입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말한다. 운송사업법상 운송사는 화물차를 보유해야 하지만 이를 대신해 차량을 소유한 화물차주와 지입계약해 운영한다. 이를 통해 차량구입비 및 보험료, 수리비 등 운영비용을 화물차주가 부담하도록 해 운송사 부담을 줄인다. 대신 화물차주는 계약한 운송사로부터 일감을 받는다.
지입제는 화물차 운송시장이 형성되면 서부터 존재했지만 2004년 ‘화물운송허가 제’로 신규화물차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변칙제도로 자리잡으며 더욱 활성화됐다.
화물운송허가제는 정부에서 화물운송 공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해 신규화물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시행됐다. 화물차량 총 수량을 제한하는 수급조절을 통해 화물운송시장의 과잉경쟁을 완화했 지만 화물운송허가권인 노란색 영업용번호판에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이 붙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또한 영업용번호판 임대만 전문으로 하는 지입전문회사 등 일하지 않는 운송사가 등장하는 폐단도 나타났다. 운송사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운송업무를 할 수 없는 화물차주는 통상 2,000만~3,000만원을 지급하고 번호판을 가져오고 매달 지입료를 운송업체에 지불하게 되는 부당한 피해를 입게 됐다.
이에 따라 운송업계에서 허가제 완화와 지입제 폐지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 하지만 이미 영업용번호판을 소유한 허가권자들에게는 번호판이 재산권으로 인식되고 있는 등 이해관계가 얽히며 정책변화를 꾀하기 어려웠다.
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운송사의 본질은 차주와 화주를 연결해줌으로써 일의 가치를 만드는 것인데 이런 본질적 가치가 많이 훼손됐다”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차주들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본질적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며 규제를 바탕으로 직접계약과 ‘일하는 번호판’을 장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입제갑질 과태료 500만원·최대 감차 처분
지난해 2월 국토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지입제 개혁과 표준운임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화물운송산업 정상화방안’을 발표해 이와 관련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관련법안의 국회논의가 지연됨에 따라 지난해 12월 국토부는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개정 등을 통해 화물운송산업 개혁과제의 지속 추진입장을 밝혔다. 이어 후속조치로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 등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화물차주의 차량소유권을 보호하고 운송사의 부당한 갑질근절 등을 위해 번호판사용료, 명의이전비용 등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부당금전을 요구하거나 이를 받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즉 운송사가 지입계약 체결을 명목으로 번호판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지입계약 만료 이후 차량명의를 변경해 주는 조건으로 별도의 금전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는 운송사는 과태료 500만원 부과는 물론 최대 감차처분(사업면허취소)까지 받게 된다.
또한 화물차로 인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과적을 요구하거나 판스프링 등을 불법튜닝해 운행하는 행위도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는 운송사는 최대 허가취소까지 받게 된다.
이와 함께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일감을 제공하는 등 제 역할을 다하도록 현재 운영 중인 최소운송의무제(운송사가 연간 시장 평균 운송매출액의 20% 이상 화물을 운송할 의무)를 내실화한다. 예를 들어 운송사가 화물차주에게 일감을 제공하지 않는 등 최소운송의무를 위반하면 현재는 사업정지에 불과하나 앞으로는 소속차량도 즉시 감차처분을 받게 된다.
이를 이유로 운송사 차량감차가 이뤄 지더라도 해당 화물차주의 귀책사유가 없으면 화물차주가 운송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임시허가를 부여하는 등 제도적 보호장치도 마련한다.
현재 대폐차(기존 차량을 폐차하고 다른 차량으로 대차하는 것) 등의 변경신고 관련 위탁사무를 운송사 단체인 협회가 수행 중이나 최근 국토부 자체점검 결과 불법적인 차종변경 대폐차 등 389건의 의심 사례가 발견돼 지자체 등과 함께 조사 중이다.
이에 따라 위탁사무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위해 법령에 협회로 명시돼 있는 위탁기관을 국토부가 지정고시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국토부는 대폐차 등 변경신고 업무의 협회 위탁여부에 대해서도 불법행위 발생여부,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을 고려해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다.
상반기 표준운임 가이드 공표
한편 표준운임제 도입지연에 따른 운임기준의 부재가 운임하락으로 이어져 화물차주의 소득불안이 커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화물차법 개정을 통한 표준운임제 도입은 지속추진하되 법 개정 전까지 입법공백을 방지하고 화물차주 우선보호를 위한 표준운임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정부는 2월까지 표준운임 논의를 위한 표준운임위원회를 구성하며 위원회 논의를 거쳐 표준운임 가이드라인을 상반기 중 공표할 계획이다.
정우진 국토부 물류정책관은 “지입제 개혁과 표준운임제 도입 등 화물운송산업 개혁은 화물차주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라며 “정부는 이번 조치를 시작으로 국회와 협력해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위한 화물운송산업 개혁을 지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